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AI가 글을 써주는 무서운 세상

스테르담 2024. 2. 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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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글을 써주는 무서운 세상이다.

AI가 글을 써 주는 게 어때서? 더 편리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왜 무섭다는 표현을 하는가?

 

우리는 모두 AI의 미래와 결말을 알고 있다.

아포칼립스(세계의 종말)를 그린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AI와의 싸움이나 AI에게 지배되는 공통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지문이 다르듯 생각이나 세상을 받아들이는 판단의 정도가 다르다. 그러한 존재들이 공통적으로 그려내는 상상이라면, 그 상상은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화면을 터치한다던가, 걸어 다니며 전화 통화를 한다던가, 영상으로 대화하는 기기를 우리는 불과 몇십 년 전부터 상상해 왔다. 공통된 상상은 이처럼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공동 상상력은 AI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AI가 더 똑똑해서? AI가 더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아니다. 사람들이 우둔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리를 위해 AI를 발명하고 개발시킨다고 하지만, AI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덜 움직이고, 덜 생각하고, 덜 생산한다. 자율 주행은 사람들을 덜 움직이게 한다. 인공지능 검색기는 사람들이 덜 생각하게 한다. 수많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생산을 해낸다. 사람들에겐 잉여 시간이 주어진다. 무얼 할 것인가? 장담컨대, 숏폼을 볼 것이다. 생산적이기보단 소비적인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왜? 더 쉬우니까. 사람은 쉬운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불편한 선택을 해야 성장을 하는데, 이 불편함을 AI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러니 AI는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를 계발하며 더 똑똑해진다.

 

AI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사람은 생각을 덜 하게 된다.

 

AI는 더 활발해지고.

사람은 더 게을러진다.

 

AI는 더 많은 걸 생산해 내고.

사람은 그저 소비에 몰두한다.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렇다면 더욱더 인간적인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감정'이란 키워드를 내건다.

AI가 과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기뻐하며 웃고, 슬펴하며 웃을 수 있을까. 어떤 영화는 그러하지 못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또 어떤 영화는 사람을 능가하는 공감 AI로봇을 보여주며 과연 누가 더 '인간적'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 마당에, 이제 AI가 글까지 써준다?

AI에게 글을 맡긴다면, 과연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고, 내 경험과 고만고만한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고결한 작업이다. 그 고결함을 포기한다면, 과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나보다 잘 쓴 AI의 글에 박수를 칠 것인가, 부족하고 허점투성이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진솔한 글에 응원을 보낼 것인가.

 

나는 무섭다.

사람은 도파민에 중독된 뇌만 부유하게 되고, AI는 (인간이 시킨) 학습을 통해 골고루 발전하게 될 미래가. 

 

제발, 글만큼은 AI에게 넘겨주지 말기를. 

 

AI는 편리와 효율을 위해 발명된 인간 욕구의 산물이다.

글쓰기는 불편해야 하며, 비효율적이어야 한다. 

 

불편해야 생각을 하게 되고, 실행하게 된다.

비효율적이어야 의미와 깨달음을 찾게 된다. 

 

글쓰기엔 이성과 감정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때론 이성적이고, 때론 감정으로 글을 쓰며. 나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과정을 우리는 '자아성찰'이라 한다. AI에게 '자아성찰'을 맡길 것인가. AI가 성찰하는 자아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나의 성찰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가?

 

'나'는 '나'가 되어야 한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나의 삶을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내가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여 살아줄 수도 없다.

 

편리함을 위해 하나 둘 AI에게 맡기다 보면, 결국 우리는 모든 걸 전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만큼은 AI에게 양보하면 안 된다. 글을 쓰기 위해 도움을 받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의 것을 넘기면 성찰은 나의 것이 아니라 AI의 것이 된다.

 

무서운 세상임을 돌이켜야 한다.

지금까진 사람이 무서웠지만, 앞으로는 AI가 무서워질 것이다.

 

속고 속이는 것이 순수하게 느껴질 만큼, AI에게 자아라는 주권을 넘긴 인류에겐 더 암울한 아포칼립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글쓰기 그게 뭐 대수라고... AI가 글을 써주는 편리함을 확대하여 왜곡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내 대답은, 글쓰기는 '나'를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관통한 글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아니, AI는 스스로를 관통할 수 없다. 데이터의 연산과 합산, 나열과 분리를 통해 내어 놓는 글과 긍정적 자기 분열을 통해 내어 놓는 글의 진솔함은 그 스스로를 꿰뚫는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것이다.

 

AI가 글을 써주는 무서운 세상이다.

무서운 세상일수록 글은 온전히, 오롯이 내가 써 나아가야 할 고집이자 숙명이다.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는 “나는 꾸준하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자 동시에 작가라는 부캐를 가진 저자는 자신은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글쓰기만큼은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한다. 글쓰기와 전혀 관련이 없었고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의 글쓰기.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글쓰기를 생명줄로 만들 수 있었는지 자신만의 노하우를 자세히 풀어낸다. 글이 주는 위로의 힘은 물론, 글을 쓰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과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까지. 시작은 막막했지만, 쓰면 쓸수록 보물이 되는 글쓰기를 이제는 독자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혹시 글쓰기에 관심이 있지만 “일이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또는 “글을 쓰기엔 내 삶이 너무 평범해서”라고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는가? 저자는 “세상에 글이 되지 않을 삶은 없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무료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빡빡한 직장 생활의 숨구멍이 되어줄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저자
스테르담
출판
미래의창
출판일
2022.03.22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살다 보면 마음이 많이 상한다’고 읊조리는 저자는 이 책에서 글쓰기로 스스로를 다루는 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 방법이 꽤 격하다. 다독이거나 안아주는 대신 ‘마음 한가운데를 관통하라’고 주문한다. 퇴근 후 유튜브에 여가를 맡기던 평범한 직장인은 어느 날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하루하루가 지겨워졌고, 그렇게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렇게 글을 생산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관통하는 글쓰기란 무엇인지 정의하며, 글쓰기를 충동질하는 책이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저자는 글쓰기란 지극히 나를 위한 심리학이라 말한다.
저자
스테르담
출판
탈잉
출판일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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