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텔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되었어.
누가 봐도 멋진, 그러나 트라우마를 가진 호텔 후계자와 그곳에서 일하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예쁜 여주인공이 사랑을 이어가는 내용이었지.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정말 몇 번을 우려냈는지도 모를 만큼 몇 세기를 걸쳐 반복되는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은 또 그것에 빠져들었어. 사람들의 반응이 참 재밌었단다. '이가 다 썩을 지경이다.', '당뇨병에 걸릴 것 같다.'라고 말하며,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함이 얼마나 달달한지를 간접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표현한 거지. 드라마와 동화는 그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처럼 막을 내려. 오래오래 행복하게, 영원히 잘 살았답니다... 란 말. 이러한 말이 생긴 이유는? 현실에선 그러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꾸만 각본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거겠지. 아빠도 드라마를 보면서 저 달달함이 얼마나 갈까... 란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거든.
아빠는 '성(性)'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랑의 기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
너희가 사랑을 감정을 느낄 때, 너무나 달달해서 마음속 이가 다 썩어 들어갈 때, 세상 모든 걸 다 주고 하늘의 별을 따다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버린 서로의 마음을 마주하며 느끼는 당혹감을 경감해 주기 위함이야.
먼저,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사랑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 작가 주 -)로 찍어보면 흥미로운 것을 볼 수 있어. 바로 사랑의 '실체(?)'를 말이야. 그들의 뇌에서는 도파민이란 신경절달물질이 넘쳐나. 도파민은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면서 상대방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하고, 그/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종용하지. 그런데,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도파민은 매우 즉흥적인 녀석이야. 끈기가 없어. 오래 지속되지 않아. 사랑에 있어서 도파민이 지속되는 기간은 2~3년 정도거든. 사랑의 유통기한이 3년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란다. 그래서 대개 3년이 지나면 '권태기'란 불청객(?)이 찾아오곤 하지.
그러나 사랑의 유통 기한이 3년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어.
엄마와 아빠는 결혼한 지 십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니까.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드라마와 같은 달달함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 돼. 더불어, '사랑의 변화'를 받아들이면 돼. 달달함만을 고집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 돼.
엄마와 아빠보다 더 오랜 기간을 사랑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어.
이러한 사람들은 도파민이 빠르게 식어버린 자리를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으로 채워 나가. 옥시토신은 시상하부 내에 위치한 신경세포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고 자궁수축과 성관계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2008년 미국 에모리대학의 한 박사팀에 의해 옥시토신이 애착 형성에도 관여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어. 네이처에 올라온 그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옥시토신을 제거한 수컷과 암컷 들쥐들은, 수컷의 경우 교미가 끝나자 자취를 감추었고 암컷도 수컷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해. 마치 권태기를 겪고 있거나 결혼한 지 십 수년이 되어 남남처럼 사는 커플처럼 말이야. 그런데, 들쥐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리면, 이 들쥐 커플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가 좋아졌다는 거지. 이뿐만이 아니라 수컷 들쥐는 자식 바보가 되어 들쥐 새끼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기 시작했어.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는 이러한 실험을 사람에게도 적용했어.
아담 박사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에게 옥시토신 약물을 투여하여 경과를 지켜봤는데, 서로를 경멸하던 부부가 놀랍게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시작했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도망쳐버린 도파민의 자리를, 옥시토신이 채운 결과겠지.
사랑의 유통기한이라 여겨지는 3년이 지나도 여전한 사람들에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랑은 없지만, 함께 있음으로 해서 느껴지는 심적 안정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야. 격한 감정이 사라졌기에 사랑도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사랑의 형태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오히려, 열정적인 감정을 넘어선 한 단계 높은 사랑의 형태라고 보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야.
옥시토신으로 구축된 이러한 안정감은 또다시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을 만들어내는데,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어. 오랜 시간을 보낸 부부는 흔히 '정으로 산다'는 표현을 하곤 해. 아빠가 생각할 때 이 '정'은 사랑, 배려, 이해, 미움 등을 아우르는 아주 고차원적인 또 다른 사랑의 형태인 것 같아. 옥시토신의 유통 기한에 대해선 걱정을 내려놓아도 돼. 잠시 사이가 좋지 않으면 옥시토신은 줄어들지만, 관계가 회복되면 다시금 분비되거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더라도 화해한다면. 옥시토신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야.
사랑이 식었을 때, 도파민이 떠나간 자리를 무엇이 채우고 있는지를 바라보렴.
옥시토신을 찾는다면 그 사람과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이어나가겠지만, 도파민의 사랑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사람이라는 자극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너희 마음이 판단해 줄 것이란다.
도파민과 옥시토신의 사랑은 계속해서 엎치락뒤치락할 거야.
그에 따라 사랑의 유통기한도 고무줄처럼 변하게 되겠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를 너희도 분명하게 될 거야.
그 시점에 이르면, 이 글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도파민의 사랑으로 뜨거움을 경험하길.
옥시토신 사랑으로 한 차원 높은 사랑의 숭고함을 겪어 보길.
그리하여 너희가 행복한 '성(性)' 생활을 하길 아빠는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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