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한다는 건, 비장하면서도 비루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하루는 비장하고 또 어떤 하루는 비루하다.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고귀한 책무에 대한 자부심이 일어날 땐 비장함이 온몸을 감싸지만, 한낱 팔랑이는 월급에 온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함을 상기할 땐 스스로가 비루하기 그지없다.
엄밀히 말해, 비장함보다는 비루함이 더 많은 나날이다.
직장인의 삶이 그렇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보이고, 고만고만한 등짝과 어깨엔 비루한 고민들이 한가득이다.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 하루에도 셀 수 없는 고뇌들이 멈추지 않고 달려든다.
직장은 회사체질이 아닌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 누군들, 직장에서의 지금 내 모습을 상상한 사람들이 있을까.
고로, 출근은 쉽지 않은 일이며 '나'라는 자아를 조금은... 아니 생각보다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한다.
비장함보다는 비루함을 더 많이 느끼는 직장인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싶다.
그건 바로, 저마다 각자의 냉장고를 집안 어느 곳에 두라는 것이다. 그 냉장고는 매우 차갑다. 하여, 무엇을 보관하든 언제 다시 꺼내든, 넣어 놓은 모든 건 다시 싱싱하게 꺼낼 수 있다. 우주에 단 하나뿐인, 최고의 성능을 가진 냉장고다.
출근하기 전, 이곳에 무엇을 넣어야 할까.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 그래야 직장에서 탈탈 털리고 돌아와서도 '자아'를 잃지 않고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20년 넘게 출퇴근을 반복해 오면서, 어느새부턴가 나는 이 냉장고를 잘 사용해 왔음을 고백한다.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것도 보증한다.
직장은, 어차피 나보다는 내가 아닌 나를 더 연기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매일 아침, 냉장고 속에 내려놓고 가야 할 것들에 생각해 보자.
우선 내 것을 내어 놓을 테니, 각자의 것들을 함께 떠올려 보자.
우리는 비굴한 사람을 향해, 간과 쓸개를 모두 내어 준다라는 표현을 한다.
간과 쓸개는 인체의 해독과 소화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기관이다. 간과 쓸개는 각각 '소설작용'과 '상승작용'에 깊이 관여한다. 사방으로 기운을 소통시켜 주고, 소화를 도와 원기를 끌어올려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운이 응어리진다. 마음의 응어리는 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말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모든 문제가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는 간과 쓸개를 직장에 가져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직장에선 비굴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간과 쓸개가 망가질 일도 분명 많기 때문이다.
싱싱하게, 냉장고 속에 보관하자.
방법을 잘 모르겠다면, 용왕 앞에서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토끼와 거북이 동화를 떠올리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
20년 넘는 직장생활과, 50년이 다 되어가는 삶을 돌아볼 때.
나를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할 능력도 없으면서 높은 목표를 잡거나, 나에게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늘 인정받고 승승장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직장은 인정받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간혹 인정받는 일이 있을 순 있지만, 서로가 인정하여 주는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일이 동화의 결말처럼 오래오래 평화롭게 이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사회의 때가 그리 많이 묻지 않았을 때 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직장인에게 있어 '인정'은 물론 중요하다. 인정의 정도의 따라 월급이 결정되고, 승진도 함께 요동하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은 바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 또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착각하는 하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삶의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나는, 인정 강박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출근한다.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변함없지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좌절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럴 때도 있고, 그러하지 않을 때도 있는 법. 아침에 일어나 지구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나를, 내가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나를 괴롭힌 것이 나였으니.
누구보다 나를 인정할 것도 나여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볼 때, 외세의 침략에 소구무책으로 당했던 때는 모두 '무사태평'한 시절을 보낼 때였다.
그러다 침략을 당하면,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우고 마침내 다시 나라와 주권을 되찾았다. 문제는, 그러한 일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와 정서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직장이라는 곳이 너무나 다이내믹하다 보니, 간혹 우리는 생각한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오늘은 그냥 지나갔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의 역설과 부조리는 이때 발동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여지없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도 정말 바라지 않았던 일들이. 드라마처럼,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과 마음을 나만의 냉장고에 내려놓고 가는 이유다.
차라리, 오늘은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에 대해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나를 더 편하게 한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작든, 크든.
중요한 건,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라, '이 또한 잘 보내리라!'라고 다짐하는 마음이다.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은 수동적이고, 잘 보내겠다는 의지는 능동적이다. 수동과 능동은 선과 악의 개념이 아니지만, 때론 능동적이어야 나를 더 잘 지킬 수 있다.
이 외에도, 내려놓고 출근해야 할 것들이 많다.
자존심, 인격, 돈 버는 기계와 같다는 자조, 반복에 대한 실망감.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또한, 부연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반문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지키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는 참으로 버겁다.
먹고사니즘의 역학 속에서, 직장인은 자의든 타의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그렇다면, 잔말 말고 그 버거운 가면을 받아들일 수밖에. 받아들였다면,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다름 아닌,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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